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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스크랩] 여자를 생각한다

 

                      -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1.어머니를 통해서 본 여자의 성


  영화 ‘별들의 고향’을 보면서 잘생긴 당대의 최고 남자배우가  여자배우에게 ‘경아 오랜만에 누워보는군’ 하며  안는 장면을 보면서 숨 막히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 남녀 간의 사랑의 표현이란 서로 떨리게 손을 잡는 것 이외 별다른 표현이 없다는 것만 알던 나이였기에 영화 속에서 남녀가 누워 안고 있는 장면은 일대 커다란 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다 우리 사춘기 시절 나온 하이틴 영화는 우리들의 마음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얼굴도 예쁜 하이틴 스타 임예진과 이덕화.진유영.전영록은 고교생의 신분으로 키스를 하고 손을 잡고 서로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드는 모습은 우리의 심장을 벌렁 이게 했고 그들을 우상으로 가슴에 담아두게 되었다. 그리고  여성의 몸이 수영복을 입은 채로 ‘나 한가해요’란 포즈로 섹쉬얼 하게 서있는 모습이 담긴 선데이 서울 같은 그야말로 통속적인 잡지는 남성들이 은근히 보는 빨간 잡지였다. 그 시절 성은 은밀하게 가려진 은막속의 그림이었고 잡지 속에 남몰래 관음으로 바라보는 장치였다. 그 시대도 어른들에게는 춘화라든가 가루지기 옹녀 소녀경 등이 은밀하게 거래되었겠지만 우리는 그저 성적 표현이란 손만 잡아도 임신이 되고 손 잡힌 남자에게 시집가야 된다는 어떤 관념을 안고 살았었다. 그러다 우연히 동네 아줌마들과 조조할인으로 본 영화 ‘원초적 본능’은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목이 마르게 했다. 샤론스톤의 요염한 나체로 남자를 침대에 묶어놓고 여성상위 체위로 격렬하게 정사를 벌이고 얼음송곳으로 그 남자를 살해하던 장면은 이상하게 온몸의 피를 빠르게 돌게 했고 심장박동수를 배로 늘려놓았다. 영화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첫 장면에 입술이 마른 우리, 성의 묘사에 너무도 서툰 우리가 본 첫 장면 때문 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영화 뽕, 변강쇠. 산딸기등 대체로 성이 강하다고 표현되는 여성의 주도로 표현된 영화는 성행위의 대담한 표현으로 3류 극장에서 은밀히 상영됐지만 그 영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간간히 보면서 그동안 가려져 있던 여자의 성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 후 여성의 성이야기는 여성잡지의 부록으로 심심찮게 등장하고 그 부록 속에는 부부간의 성 체위라든가 어떻게 하면 즐거운 성생활을 하게 되는지 같은 방법을 친절하게도 공개해 놓았다 그런 잡지들을 읽으면 내 몸은 뜨거워졌고 그동안 시도하지 못한 그런 방법들에 대한 동경이 생기게 되었다.


이제 영화에서도 전라의 정사신은 보는 것은, 다반사가 되었고 특히 여성이 리드해가는 주도적인 성행위의 묘사가 부지기수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여성이 체위만을 상위로 올라갔다고 여성의 성이 주체적인 성 으로 설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청상과부가 된 며느리의 정조를 강요한 열녀문으로 그 집안의 훌륭한 가문을 내세웠던 시절을 지나며 어머니들 세대의 성이야기는 빨래터 아니면 김장하는 날, 40이 넘은 중년여인들의 웃음소재로 등장했던 여자의 성.

  21세기는 그야말로 성이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성 강사 구성애의 우리들의 아름다운 성이야기는 방송매체를 타고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며 수 주간 방송되었고 그러며 성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부부간의 성숙한 의식, 아름다운 행위라는 인식으로 자리 잡으며 최고의 즐거운 놀이로 인식되어갔다.

 요즘 케이블방송은 그야말로 성 천지다. 그것도 남성보다 여성들의 입에서 나오는 부부간의 성이야기는 이제 성은 남성에 의해 소통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주문에 의한 좀 더 과감하고 색다른 과정으로 변모해갔다. 우리시대의 어머니들은 그저 남성에 의해 치러진 성의식으로 출산의 바탕에 두었다면 아기도 낳지 않는  이시대의 성은, 쾌락의 도구로 쓰여 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왜 여성들이 말하는 그 성이야기가 가끔은 후련한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 30대의 여성들, 그야말로 결혼하지 않은 듯한 미시들이 어깨를 드러내고 허벅지를 드러낸 몸을 꼬고 앉아 우리는 어떤 체위가 좋고 하루저녁에도 몇 번을 하고 멀티오르가즘을 위해 어떤 걸 하고, 내 집안의 은밀한 이야기를 백주대낮부터 쏟아낸다. 어느 프로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고발했는데 그의 아내는 남편이 술을 먹고 집에 들어오면 자신의 팔 다리를 묶어놓고 상위체위로 성행위를 한다는 그야말로 원초적 본능의 대사를 쏟아내며 웃었다. 창호지 안에 가려 흐릿한 실루엣의 정사 신으로도 침이 넘어가고 목이 마르던 시절을 지나 유리상자안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들려주는 세상에서 좀 더 강하고 자극적인 이야기가 나열되고 있는 여자의 성.


그 여자의 성을 우리 어머니는 어떻게 느끼셨을까?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 암 투병을 하시며 병원에 누워계신 어머니께 비로소 어머니의 성을 물어보았다. 고단한 한평생의 길 위에서 이승에서의 삶이 조금씩 소진되어가고 있는 어머니에게 그동안 이세상의 소풍이 즐거웠는지 묻고 싶었다. 아버지 말씀에 열일곱 살에 시집오신 어머니는 그야말로 복숭아꽃 같았다고 하셨다. 결혼식을 치른 저녁 족두리를 벗기는 아버지에게 “나는 남의 남자하고 못자요” 라고 떨리게 말했다는 어머니.


어머니의 방이 따로 없었다. 가난한 도시 언저리 산언덕에 자리한 사글세 방 한 칸에는 중학교에 들어간 큰오빠와 초등학교 다니는 작은오빠 나 그리고 여동생  어머니 아버지가 옹색하게 다리를 뻗고 지내야 했다. 흐린 전깃불 아래 공부하는 오빠의 공부방이 따로 없으니 자연 어머니는 아랫목에서 동생을 데리고 주무시고 그 가운데 작은오빠와 내가자면 큰오빠가 공부하는 책상머리에서 아버지는 새우잠을 주무셨다. 큰오빠는 밤을 새워 공부하기 일쑤여서 우리의 잠을 방해하기도 했고 짜증나게도 했지만 어린 시절 우리는 한번 잠이 들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런데 2년에 하나씩 동생이 태어났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아기는 어떻게 태어나는 지 알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저 엄마는 자연히 아기를 낳는 그런 사람으로 여겨졌었다. 내 아래로 동생이 셋이나 되었고 우리는 여전히 6남매가 단칸방에서 살았다. 그러며 어머니의 세월이 흘렀고 어머니의 시간 일흔 두해가 마감되려고 하고 있었다.


“엄마, 아버지하고 할 때 좋았어?”

“애는..별걸 다 물어본다. 좋기는 ...좋기는..힘들기만 했지. 그저 번개처럼 지나가는 아버지 손길이고..”

“그럼 오르가즘도 몰랐단 말야?”

“그게 뭔데..먹고 살기 바쁜데..”

"세상에~”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돌아가신 것도 서러웠지만 어머니의 여자로서의 삶이 가여워서 울었다. 여자의 몸이  노래하는, 불꽃 터뜨리는 불꽃놀이 한번 경험하지 못하고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자식들 낳느라 , 그리고 키우느라 여성을 잃고 살아온 어머니의 세월이 너무도 가여워 울었다. 그러며 아버지와 55년을 살다 가신 어머니는 그 문제 때문에 이혼을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아버지께 투정부리지도 않았고 그저 여자의 길로 순응하며 산 세월이 가여워 울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이혼사유가 성격차이라고 하면, 성격차이가 아닌 성적 차이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세월을 우리어머니는 가슴에 묻고 돌아가셨다. 이 세상에 자식 여섯을 남겨 놓은 채.


2.문학에 나타난 여성의 성


여자의 성이 문 닫혀 있지만은 않았다.  그저 애써 외면하려 했을 뿐인지 모른다. 일제 강점기시절을 지나며 일본으로 건너간 신여성들이 있었다. 그 신여성들이 가장먼저 받아들인 게 여성의 주체적인 성이 아니었나 싶다. 그동안 남성에게만 지배받아온 여성의 성이 여성이 주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알게 되었다. 자유연애를 하고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지고 남자와의 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이 닫혀있던 우리나라의 인습은 그녀들을 고운 눈으로 봐줄리 없었다. 자유로운 성을 추구하는 신여성들은 악마의 화신으로 낙인찍혔고 그들의 마지막 삶이 피폐했다.

 


3.심순덕의 시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를 통해 살펴 본 시어머니의 여성


돌아가신 시어머님도 24년간 8남매를 낳으시고 남편이 중학교 들어가기까지 친정을 한 번도 가지 못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호된 시집살이를 하셨다 한다. 내가 결혼해 가서 본 어머니의 삶, 어머니는 여자가 아니라 집안의 일꾼이었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아궁이에 불을 지펴 아침을 지으시고 새벽밥을 드신 후 밭으로 나가 농사를 지으셨다. 시어머니의 불호령을 들으며 일일이 이불빨래를 했고 아버님 입으실 옷을 일일이 손으로 꿰메 만들어야 했다. 늦은 밤 호롱불 아래서 옷을 만들다 잡이 들면 어김없이 불호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한겨울 꽁꽁 언 냇물에서 광목이불 빨래를 맨손으로 했고 김장철이 되면 몇 백 포기나 되는 배추를 절여 냇물에서 절인배추를 씻어 김장을 하셨다고 한다. 그러며 집안에 오는 손님들 일일이 술상을 차려냈고 밥상을 차려야 했다. 어머님은 내 남편인 아들을 첫째로 낳고 바로 아래 딸을 낳으셨는데 시할머니는 위에 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딸을 낳았다고 첫국밥을 콩을 넣어 해주고, 몇날며칠을 울어 어린 아기가 삼신이 틀어지는 (아기가 등이 굽으며 울었다고 함)일을 겪었다고 하셨다. 아기 낳고 3일째 되던 날, 기집 년 낳고 뭘 잘했다고 자리보전이냐고 부엌에서 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려 아기 낳은 지 3일 만에 일어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할머니도 여자면서 여자인 며느리를 이해하지 못했고 여자로 태어난 손녀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옆에 섰던 어머니의 남편은 어머니의 남편이 아니라 할머니의 아들로만 살았다. 어머니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언제나 남의 편 어머니 편이었다. 아니 어머니의 역성을 들라치면 할머니는 길길이 뛰시며 통곡을 하셨다고 한다. 아니 어쩌면 어머니의 남편은 그 시절도 마마보이였는지 모른다.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할머니가 조종하는 대로 그렇게 사셨다. 아내는 그저 그 집안의 일꾼이고 남자의 욕정을 채울 때 마다 하나씩 아기를 낳아 24년간  8남매를 낳으셨다.

그런 어머니께 물은 적이 있다. 어머니는 좋아서 아버지랑 자고 아기를 낳았느냐고.

어머니는 좋은 게 뭔지 모른다고 하셨다. 새벽부터 밤까지 집안일에 농사일에 밤이면 고꾸라져도 모르게 잠이 들고,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떠보면 아버님은 혼자서 자신의 일을 치르고 계셨다는 거다. 어머니께 단 한 번도 의사를 물어보거나 어머니가 성을 받아드릴 몸이 되었는지 않고 일방적으로 치르는 의식 때문에 어머니의 질은 늘 헐어있었고 통증에 시달리셨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님도 아버님도 그 성교통의 의미를 모르셔서 왜 아픈지 왜 아프다고 하는지 조차 생각지 못하고 일생을 살아오셨다고 한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는 어머님의 성문을 보게 되었다. 석탄을 캐내고 방치해둔 폐광처럼 어머님의 성문은 하얀 쑥부쟁이꽃만 무성한 버려진 빈광이었다. 쓸쓸하기 그지없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자식 팔남매 낳으시느라 너 말 석 되의 피만 쏟으신 그 폐허의 문. 단한 번도 화사한 꽃 피워본 적 없는 어머님의 성문은 그렇게 또 쓸쓸히 닫히고 말았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한밤중 자다 깨어/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이 계시는 장수마을이나 노인복지관에 봉사활동을 갈 때마다 이 시를 낭송한다. 처음에 시낭송을 한다고 하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시다가 시가 중간쯤 진행될 무렵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어김없이 눈물을 닦으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시의 내용이 분명 가슴에 와 닿으시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은 자신들의 삶이 이렇게 힘들었거나, 할아버지들은 자신들 어머니와 아내의 삶이 분명 이랬던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시의 내용은 우리어머니들의 삶의 전부를 표현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겐 아득한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여자란 것을 잊고 살아온 어머니들의 참담한  역사는 언제 들어도 눈물 나게 한다.


4. 나오며 -따뜻한 세상을 꿈꾸며


주역에 보면 지천택괘와 천지비괘라는 괘가 있다고 한다. 그 글자를 내가 본 것이 아니라 한학을 하신 친정아버지께서 우리들에게, 아니 오빠들에게 그리고 제자들의 결혼주례를 보시는 자리에서 꼭 말씀하시는 글이다. 아버지의 풀이에 의하면 아내를 하늘에 이고 있는 것처럼 위하는 집안은 윤택해질 것이고, 아내를 무시하는 집안은 비색해 질것이라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 살아가는 사람들, 아내에게 잘하고 아내가 행복해하는 집안을 보면 남편들이 적당히 물러서주고 아내를 이해하는 집안이고, 아내에게 큰소리치고 아내를 무시하는 집안을 보면 별 능력도 없는 남자고 아내에게 자격지심을 느끼는 남편의 행동임을 볼 수 있다. 여성이 밥을 먹을 때 남자들과 같이 먹지 못하고 부뚜막이나 혼자 상아래 놓고 먹던 시대를 지나 나는 가족이 같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나는 여성상위라 해서 남자의 위에 올라서는 불합리한 행위가 아닌 남성과 여성이 같이 살아가는 시대,

특히 남편에 의해 치러지는 성생활이 아닌 아내의 기분과 몸에 따라 함께 나누고 즐기는 놀이문화로 건전한 성문화를 가꾸어가는 문화가 확산돼 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여성의 성이 출산을 목적으로 하는 엄숙한 행위로 비롯해 여성 몸이 원하는 아름다운 악기로 아름답게 조율되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는 원초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지금 세상의 땅값이 얼마나 비싼지를 자각하는 남성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28년 전, 나는 결혼하며 남편에게 부탁한 것이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여자가...’라는 말을 하지 말아 달라는 거였다. 여자가 왜이래, 여자가 무슨 참견이야, 여자가 뭘 알려고 해,

여자가 밖에는 무슨 볼일이 있다고, 등등. 남편은 어지간히 애쓰고 있다. 그리고 집안일은 서로 형편이 되는 부분까지 돕기로 했다. 그 부분도 어느 정도는 잘 지키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샤워하며 자신의 양말을 빤다든가 속옷을 빨고, 밥상을 치울 때 반찬그릇을 주방으로 가져다준다든가, 바빠서 담가놓은 설거지를 해준다든가, 꼭 부부의 성생활 뿐 아니라 가정생활에 필요한 제반사를 서로 주체적으로 해나가려 애쓰고 있다. 아직도 대부분의 집안일이 내 몫이기는 하지만 집안일의 몫이 전적으로 여자만의 일이 아니란 것을 이해시킨 것이 참 다행으로 생각된다. 여성의 주체적인 성은 여성의 성 뿐 아니라 여성이 그 집안에서 차지하는 생활의 몫도 주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행각한다.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대다수라고 생각하는  남자들, 그 남자를 낳은 사람은 여자라는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여자의 아름다운 자궁과 따뜻한 질과 음핵을 통해 엄마는, 아니 여자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의 마지막처럼

그러면 안 되는 따뜻한 세상이 펼쳐지기를 기대해본다.


참고로 원초적본능의 배우 샤론스톤의 나이가 1958년생, 나와 동갑 이란 걸아는 순간

가슴에 환희가 몰려오는 건 왜일까?

여자나이 50, 진정한 성의 즐거움과 주체적인 성을 엮어 갈 수 있는, 여성상위체위를 좋아하는

아름다운 나이라는 생각으로...(*)

출처 : 오기의 사랑
글쓴이 : silkjewe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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