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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떡볶이의 배후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떡볶이의 배후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한겨레 고나무 기자
» 포장마차를 운영하려면 다른 포장마차와 분쟁이 벌어지지 않도록 메뉴를 사전에 조정해야 한다.
[매거진 Esc]
‘삶은달걀 시비’로 촉발됐던 광주 포장마차 폭행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보니

폭력은 벼락처럼 예기치 않았던 데서 벌어진다. 30여년 전 ‘축구 전쟁’이 있었다. 70년 월드컵 예선에서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가 맞붙었다. 자국민들의 험악한 응원 아래서 양쪽은 원정에서 모두 패해 1승씩을 주고받았다. 양국 응원단이 충돌해 사망자가 생겼다. 세번째 승부가 무승부로 끝났지만, 진짜 전쟁이 벌어졌다. 호사가 언론들은 ‘축구 전쟁’이라는 장난스런 이름으로 이 사건을 칭했다. 그러나 사건의 이면에는 양국의 고질적인 국경분쟁이 있었다. 구조를 보지 못할 때 모든 사건은 그저 ‘해외 토픽’에 머문다.

‘담합’ 거부하자 리어커 걷어차며 응징

지난달 중순 몇몇 언론에 보도된 ‘떡볶이 전쟁’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광주 북부경찰서는 다른 떡볶이 포장마차 운영자의 물건을 부순 혐의(재물손괴) 등으로 노점상 김아무개(50)씨를 지난달 11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설명을 종합하면, 김씨는 광주 북구 전남대 후문 근처에서 떡볶이 포장마차를 운영했다. 김씨는 “달걀 값이 올라 수지가 맞지 않고, 일일이 삶은 달걀을 까 넣기 힘드니 앞으로 떡볶이에 삶은 달걀을 넣지 말자”며 다른 포장마차 운영자 7명에게 ‘담합’을 제안했다. 그러나 ㄱ아무개(54)씨는 동의하지 않았다.

합의를 거부한 ㄱ아무개씨에게 즉각 보복이 따랐다. 김씨는 지난달 10일 밤 10시20분께 ㄱ씨의 포장마차를 찾아갔다. 대학생 등 손님 8명이 어묵과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김씨는 새된 목소리로 욕을 하며 ㄱ씨의 리어카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김씨는 4살 위 ㄱ씨에게 “시키면 시킨 대로 해라. (안 그러면) 장사를 못 하게 해버리겠다. 네가 (이런 식으로) 장사를 하면 네 포장마차 옆에서 오뎅을 공짜로 다 줘버리겠다”고 퍼부었다. 김씨가 리어카를 잡고 흔드는 바람에 간장통이 어묵통 안으로 빠졌다. 먹고 있던 손님들은 겁에 질려 자리를 떴다. 김씨는 경찰에서도 “ㄱ씨 혼자 달걀 넣은 떡볶이를 팔면 다른 포장마차에 손님이 줄어든다”며 씩씩거렸다. 이에 대해 ㄱ씨는 “가뜩이나 장사도 잘 안되는 마당에 떡볶이에 달걀을 넣지 않으면 그나마 찾던 학생들도 발길을 끊을 것”이라고 항변했다.


떡볶이에 계란을 넣을지에 대해 담합이 이전에도 자주 있었을까? 조직폭력배들이 떡볶이 포장마차를 관리하는 것은 아닌가? 광주 북부경찰서는 이와 관련해 “김씨는 비슷한 혐의의 전과도 없고, 특정 노점상 단체 소속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가장 큰 노점상 단체인 전국노점상총연합회(전노련)도 “광주지역에는 사실상 지부가 없다”고 밝혔다. 적어도 이 사건 뒤에는 ‘조직화된 힘’이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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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취재 결과 △포장마차의 메뉴를 정하는 데 ‘금기’가 있으며 △메뉴를 정하기 전에 인접한 포장마차들이 상의하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기자는 서울 이화여대 근처에서 2005년 10월부터 약 1년간 떡볶이 포장마차를 운영했던 ㅇ아무개씨를 인터뷰했다. 포장마차 메뉴를 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그는 ‘인접한 상가의 메뉴와 충돌하는지’ 여부를 꼽았다. 가령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팔고 싶어도 근처 건물에 떡볶이집이 있다면 떡볶이를 메뉴에서 빼야 한다는 것이다. 노점상들이 내세우는 가장 큰 명분은 자신들의 사업이 ‘생계형’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노점상들은 포장마차가 기존 상권과 같은 메뉴를 팔아 반발을 사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두 생존권’이 충돌할 경우 원칙적으로 불법인 노점상 쪽 명분이 약하기 때문이다. ㅇ씨도 자신의 포장마차 근처에 떡볶이 집이 생기는 바람에 포장마차를 접어야 했다.

메뉴선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

이어 ㅇ씨는 포장마차의 메뉴를 정하는 데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함을 지적했다. 서울 강남역·종로·이화여대·신촌 등 왕래가 많은 이른바 ‘역세권’일수록 특히 그렇다고 그는 주장했다. ㅇ씨는 그 근거로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그는 포장마차를 준비하면서 메뉴나 재료 준비를 할 필요가 없었다. ㅇ씨에게 자리를 ‘임대’해준 ‘관리자’가 알아서 인접한 포장마차 주인들과 협의해 메뉴를 정해주고 재료 구입까지 알아봐줬다. ㅇ씨는 대가로 다달이 ‘자릿세’ 50만원을 관리자에게 줬다. 그는 “강남·신촌 등 주요 역세권의 포장마차는 대부분 자릿세만 받는 ‘관리자’가 따로 있다”며 “내가 자릿세를 준 ‘관리자’가 ‘보이지 않는 기구’를 통해 모든 것을 정해줬다”고 말했다. ㅇ씨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들 ‘관리자’는 등기부등본상 아무런 재산 근거가 없지만, 자리를 선점해왔다는 ‘프리미엄’을 근거로 돈을 받는다. 자신은 포장마차 사업을 더는 하지 않는 대신 돈을 받고 자리를 파는 셈이다. 새로 진입하는 운영자가 이 ‘질서’를 거부할 땐 유·무형의 제재가 따른다. ㅇ씨는 “그러나 예전처럼 조폭이 개입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ㅇ씨는 역세권은 월세가 더 비싸며, 강남역의 경우 300만원을 호가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노련은 강남역·신촌·종로 등 서울 역세권의 포장마차 메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단체 회원은 1만여명이며 서울 역세권 포장마차 절반 이상이 회원이다. 김장용 전노련 서울남부지부장은 “신규 진입 회원이 그전에 자리 잡은 포장마차 메뉴와 겹치지 않도록 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겨울 포장마차는 낭만의 상징이다. 그래서 정호승 같은 시인은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하여/ 단 한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술한잔’)고 노래했다. 그러나 떡볶이 포장마차의 휘장 뒤에는 엄연히 ‘현실의 질서’가 있었다.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