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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우리가 숭례문을 잃어버린 진짜 이유를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숭례문을 잃어버린 진짜 이유를 돌아봐야 한다
사회 게릴라 2008/02/12 13:29   http://blog.hani.co.kr/pjasmine/9506

2006년에 일했던 서울 사무실은 시청과 숭례문 사이에 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살아온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거기 머물렀던 13개월 남짓, 숭례문 앞에서 버스를 내려 출근을 하고 창문 너머로 숭례문을 보고, 숭례문을 지나 퇴근을 하면서도 숭례문이 거기 있구나를 따로 느끼지 못할 만큼, 숭례문은 흡사 건축물이 아니라 북한산이나 한강이 그 자리에 붙박혀 존재하듯 으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만 같은 존재였다. 그 숭례문이 순식간에 화마에 휩싸여 전소되는 장면을 TV 뉴스에서 실시간 떠들고 이틀째 신문에서 낱낱히 떠들어대고 있는데도 나는 아직까지 그것이 실감나지 않는 중이다.

 

숭례문의 화재를 두고 어제 지금있는 부서의 부서장과 과장은 '틀림없이 노숙자의 짓일 것이다'라며 혀를 끌끌차고 노숙자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기러기아빠를 하면서 나를 무슨 노동운동분자 취급을 하던 서울 사무소의 그룹장도 틈틈히 2006년 내내 노숙자에 대한 굉장한 적대감을 드러내곤 했었고, 부서의 남자들은 합창조로 동조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부서 공인 투명인간인 나야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발언할 기회같은 것은 없었지만, 늘 고개가 6시5분 각도로 기울어지는 갸우뚱을 느끼곤 했다. 나도 저녁에 명동이나 서울역을 혼자 걷다가 구걸하는 노숙자들이 다가올라치면 기겁을 하곤 하지만 그렇다고 말끔한 대기업 사무실에 앉아서 그들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낼때면 거리의 노숙자들보다 그네들이 더 섬�하곤 했다. 어제 부서장과 과장의 대화는 그 정도 수위는 아니었지만-명색이 사회봉사단의 수장들이 아니시던가- 이 묻지마 범죄로 느껴지는 화재가 노숙자의 짓일 것이란 것에는 추호의 의심도 없어보였다.

 

아침에 오니 방화범이 잡혔다는데, 안타깝게도(?) 노숙자가 아니라 서민계층의 70세 노인이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종합해 본 즉슨 땅 보상금에 대한 불만으로 과거에도 다른 문화재에 방화한 전례가 있으며, 이에 대한 과징금에 다시 불만을 갖고 숭례문을 방화했다는 것이 범행동기였다. 방화범이 살고있던 일산의 집이 아파트로 진입하는 도로가 나면서 4억원의 보상금을 요구했으나 9천여만원의 보상금으로 결정이 되었다며 금액까지 시시콜콜히 보도하는 언론들이 쏟아내는 뉴스를 마찬가지로 시시콜콜히 찾아보면서 '그냥 화가 났다'는 말보다야 조금 덜 허탈한 말이지만 마음이 스산했다. 방화범의 짓은 옹호받을 수도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손해배상 될 수 없는 행위였으나, 딱하다는 연민과 더불어 기실 잘나가는 사회에서 소외받고 투명한척 구는 공권력에서 물먹은 저런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라는 현실이 아득했다. 그리고 일제히 비난의 화살이 방화범에게 쏠리고, 정치권에서 논의대신 책임의 논란만이 무성한 신문을 보는 것이 씁쓸했다.

 

방화범의 범행동기를 보도하는 언론은 방화범의 사연을 너무나 선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일산에 살던 방화범이 자기가 살던 집을 새 아파트에 입주한 사람들을 위해 밀어버리고 어쩔 수 없이 이주를 해야 했던 상황을 고려해보자. 낯설은 곳으로 옮겨가 적응을 해야하고, 일산 정도의 서울 접근성을 가진 곳에서 자기가 살던 정도의 집을 구하려면 드는 실비용까지를 고려할 때 국가가 개발을 하면서 개발지의 수혜자가 되는 대신 이주민이 되야 하는 국민에게 하는 보상은 턱없이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비단 이런 개발 관련된 문제만이 아니라 최근 우리 사회에 빈익빈부익부의 문제가 심화되고, 가진자들의 편의나 이익보전을 위해 갖기못한자들이 그마나 가진 것을 빼앗기고 거리에 서는 일이 너무나 많으며, 점덤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안락한 대기업의 울타리 안에 앉은 40~50대 남자들이 날을 세워 경계하는 노숙자들은 그런 극단의 한자락일 뿐이다. 이번에 전소된 숭례문은 지난 반세기 동안 그 자리를 지키면서 그 앞을 지나 행진해가던 각종 집회의 사연들을 바라보았던, 말하여 증언하는 대신 그 자체로 그것들을 증거해내는 존재였다. 이 시대에 숭례문의 상실은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아우성치던 이들 중 어느 삐뚤어진 약자의 분풀이의 결과일지 몰라도, 기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성장을 향해, 다수의 이익이란 미명 하에 외면하면서 키워온 사회 음지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것은 방화범 하나만 단죄하거나 문화재들에 소화기 몇대 를 더 비치해 놓는다고 해결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2006년의 어느날 FTA 반대시위를 민노총이 함께 나서서 했던 집회가 있었다. 남대문 쪽에서 시청쪽으로 사람들이 행군하는 찻길을 16층 사무실에서 내려다보면서 혀를 끌끌 차던 당시 그룹장은 다 북으로 보내버려야 한다는 둥, 나라 경제가 어려운데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둥 하면서 넌덜머리를 냈었다. 허긴..미국으로 자녀들을 조기 유학보내고 자동차정비 자격증을 따서라도 미국에서 자리잡고 싶은 소망을 하루하루 키워나가는 한국의 대기업 부장에게는 그들의 모습은 흡사 죽어야 하는데 죽지않고 걸어오는 좀비같았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 날도 숭례문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거리에 나와 피켓을 들고 걷는 것뿐인 사람들의 등 뒤를 든든히 감싸주고 있었고, 그것을 보고 혀를 끌끌차는 숭례문 주변의 빌딩에 앉은 가진자들을 향해서도 너무 뭐라하지 말라고 다독이는 어머니 마냥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가 1등이면 괜찮고, 개발이면 일단 밀어붙여 보고, 성장이면 일단 용서하면서 달려온 동안 리가 잃어버린 존재는,그저 오래된 건축물이나 복원할 수 없는 유산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밤이면 남대문 주위의 지하철 역전으로 모여드는 노숙자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고, 1500만명의 노동자 중 절반이 넘는 850만의 노동자가 비정규직이고, 재개발지역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도시외곽의 빈민으로 밀려나가고, 노점상들은 여전히 내일의 장사가 불안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21세기 한국의 신흥빈민계층으로 편입되가고, 노동자가 노동부를 억울한 사람들이 사법부를 믿지 않는 것이 오늘, 숭례문이 있었던(!) 한국의 현주소다. 불은 이성을 상실한 방화범에 의해 일어났지만, 무너져내리고 시커멓게 타버린 숭례문의 흔적은 그간 썩을대로 썩어갔던 숭례문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이젠, 우리 사회가 정말 숭례문을 잃어버린 이유를 제대로 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