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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스크랩] 우리를 제대로 압시다(5)

            우리의 습관과 생활

  우리는 기쁨과 슬픔이 무척 다양한 사람들이다. 같은 부류라 하더라도 인종에 따라서 어떤 일은 굉장히 세밀하게 분류할 수 있다. 에스키모인은 흰색 눈을 일곱 가지 이상으로 분류한다고 한다. 이는 흰색에 대한 감각도 그들의 눈에는 다 같은 것이 아니듯 우리의 기쁨을 표시하는 방법이나 웃음을 표시하는 방법은 무척다양하다. 때로는 슬픔이 북받쳐서 기쁨이 되고 기쁨도 넘쳐서 슬픔이 되어 버리는 우리의 감정은 무척 세밀하다. 그리고 그 감정 곳곳에는 우리의 독특한 생활과 습관이 섞여있다. 그 습관의 중심에는 가족이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신앙이 주축이 된다. 지극히 적은 일도 그 중심에는 전통적인 신앙이 자리 잡고 있어서 특정한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기쁜 일과 슬픈 일과 관련하여 하늘을 찾는다든지 하나님을 찾는 일은 항상 있었고 때로는 조상신 혹은 돌아가신 조상이 잘 돌보아주기를 바라는 언어적인 표현은 늘 있어 왔다. 신이 잘 봐주지 않으면 일이 잘 되지 못한다고 생각해온 전통적인 생각이 있는 것이다. 동시에 자신을 도와주는 무언가가 있어서 도움을 주면 일이 잘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다스리는 감정인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세밀할 수밖에 없고 만병의 근원도 이를 통제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슬픈 일이 축적되어 홧병이 되고 기쁨이 넘쳐서 복을 불러 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배자에 대한 생각

  우리는 양서가 뚜렷하였기 때문에 누구든지 양반을 지향하였다. 양반의 권한은 초법적인 권한을 가졌고 이를 바탕으로 이 땅을 지배하였다. 이런 세월이 500 연년이라 양반은 사람이고 양반이 아닌 사람은 사람이 아닌 금수로 취급하는 독특한 제도를 운영하였다. 양반은 죄를 범해도 제일 심한 벌이 양반을 삭탈하는 것이었다. 사형이라는 제도는 있었으나 죽음이 아니라 죽은 사람처럼 지내게 하는 상당히 인격적인 벌이었으나 중인이나 상민의 죽음은 사람의 대우를 받는 죽음이 아니라 여러 가지 私刑을 가하고 죽음(死刑)에 이른 후에 버리는 아주 잔인한 것이었다. 이처럼 극과 극에 달하는 제도 이 같은 성격이 변형되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같은 부류의 격에는 최상의 대우를 하고 다른 부류에게는 최하의 대우는 하는 이런 제도가 우리 성격에 영향을 미쳐서 동료의 관직에서의 죄는 관대하고 서민에게는 중벌을 처한다. 같은 부류에게 가벼운 벌은 이 사회를 너무 엉망으로 만들었다. 작은 범죄도 서민의 범죄는 가중되고 상류층에는 죄가 성립되지 않고 성립되어도 가벼워지는 것이 현실이고 계층에 따라서 합법이 되고 불법이 되는 일이 비일 비재하다. 물론 여기에는 중간에 꼭 필요하지 않는 허가라는 특권의식을 개입시키기도 한다. 같은 국민에게 같은 규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 생각해보자 1억 짜리 차를 가진 사람이나 1천 짜리 차량을 가진 사람의 위반 벌금은 같으면서 대우는 다르다고 말하면 이해 될 것이다. 이것을 공평하다고 말하는 것은 괴변 인 것이다. 같은 범죄를 두고 소득이 천만원인 사람이 저지른 벌금은 삼백이고 10 억인 사람의 벌금도 삼백인데 불구하고 같은 일에 천만원짜리는 무시되고 10 억에 짜리는 특혜를 받는 것이 공평한 것은 아니다. 대우만큼 벌금도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황금의 가치로 평가되는 불편부당함

  우리 사회는 서민의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이다. 서민이 필요에 따라 아무리 외쳐본들 서민의 생각은 완전히 무시된다. 얼마 전에 대통령과 중소기업인과의 대화에서도 보니 재벌계열 기업 협력업체만이 여기에 속한 듯 보였다. 이미 생각이 미치는 것은 복지국가의 이념과는 먼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복지는 관료 군인 혹은 그 수준의 사람들의 은퇴 후 전유물이다. 그들의 복지를 먼저 챙기고 서민에 서다보니 적자가 될 가능성이 염려된다. 나머지 복지예산은 얼마나 될까? 하다못해 벤처니 서민기업에 투자하면서도 재벌기업에 위탁하여 이익을 남겨주고 손해 볼 때는 국가의 돈으로 재벌의 손해는 보장해주고 하는 식이다. 국가가 체신조직으로 절약할 수 있을 텐데 합리적인 생각은 없다. 돈은 굴리면 굴릴수록 늘어나는 속성이 있고 크게 굴릴수록 작은 것은 사라지고 마는데도 작게 굴리는 것은 막으면서 큰 것은 용인하는 셈이다. 나는 지금까지의 잘못된 전통을 고쳤으면 하는 사람이지만 지금의 정부에서 내세우는 것마다 근본적인 것이 아님을 보고 실망하게 된다. 아마도 생각하는 것마다 전임 정권의 답습이고 지엽적인 것이다. 근본적인 변화를 담을 그릇도 내용도 없어 보인다. 1 %를 잡는다고 99 %의 경제를 망치고 하나의 국립대학을 제대로 못 잡아 교육전체를 망치고 스팸을 막는 다고 건전한 광고는 죽이고 포르노 같은 것은 전혀 잡지도 못하는 이런 우스운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새로운 양반을 그대로 방치하는 나라

  솔직하게 우리나라는 몇 개 재벌과 대기업과 그 계열의 가족이 가진 재산을 제외하면 국민의 재산은 마이너스에 가깝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직설적이지만 이들을 위해 최근 50 년이내에 만들어준 법만 제대로 바꾸어 본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가장 큰 부동산 투기는 집 몇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전혀 집도 없이 건설되기도 전에 분양하는 아파트 분양사무실을 두고 시작하는 것에서 건설비도 서민이 부담하고 금융이자까지 부담하게 하는 건설사 혹은 개발기업들의 투기이다 그 과정에서 누가 이런 식으로 만들어 주었을까? 일반인이 없는 아파트를 분양하면 사기 이지만 이런 것을 재벌이나 대기업이 시작한 건설사에서 하면 합법이고 보면 이 과정을 거치면  자기 자산이 들지 않고도 단지별로 하나에 수천억에서 수 조원을 번다면 이것 보다 더 큰 투기가 어디 있는가? 처음에는 건설 붐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특혜를 주었던 시절 반대급부 없이 그저 그런 특혜를 주었을까? 지금은 이런 부조리 현상을 벗겨내야 한다. 이런 일이 그 뿐이랴? 우리는 과거를 탓하면 무엇 할까? 이렇게 만들어진 특혜 수혜가 경제 전반에 걸쳐서 교육에도 심지어는 복지에도 있다. 혹자는 이런 특혜들을 제거하면 기득권층의 혼란이 커질 것이라 우려한다. 국민의 1 %를 위한 특혜에 대한 정당한 논리만 제시하면 혼란이 없을 것인데 지금의 정치인 관료 등이 이런 일의 수혜자 이였기에 쉽게 개선할 수 없는 일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함께 사는 사회     송 세준 씀

출처 : 함께하는사회(L.a.w)together/송세준
글쓴이 : 친구여 반가워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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