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병든 신앙 고치지 못하고 선교하면 병만 전염시키는 꼴이다
그래도 같은 핏줄인데
언제부턴지 우리의 신앙을 지배하는 것은 상투 트고 양복 입은 퓨전식의 신앙이다. 필요에 따라 급조되고 편리하게 만들어진 신앙이다. 이 미개한 신앙을 새 옷 입혀 해외 선교를 한다고 한다. 하늘에서 본다면 칭찬은커녕 기절초풍할 일이다.
한국적인 신앙은 어딜 보나 불투명하고 불명확한 것을 가지고 강아지 부르듯 신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되는 줄 아나보다. 이것은 신을 망령되게 만드는 일이다. 지하철에서 길가에서 부르는 그 신은 늘 고막에 병이 들 지경일 것이다.
나는 요즈음 고민에 빠져 있다. 제 교회에서는 다단계로 고통 받는 교인이 늘고 요행을 얻기 위하여 새벽 제단에 복을 비는 사람은 느는데도 해외여행을 선교여행 핑계 삼아 저질문화를 옮기고 있다. 이는 엄밀히 여행사의 새로운 장르 개발에 놀아나고 있는 것을 선교라 하는 것임을 아는 이는 알 것이다. 제나라 빈촌의 변소청소도 안하는 이들이 남의 나라 변소보고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다고 호들갑을 떠는 일처럼 보여서 씁쓸하다.
젊은이들이 경험을 위하여 세계를 둘러보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이것은 오지 캠프를 좀 변화시켜서 만든 여행지들 이미 나간 선교사들의 변칙 민박과 겸한 현지 프로그램을 선교여행이라니 딱한 생각이 든다. 이 변형된 캠프로 세계가 떠들썩하다. 여기에 선교라는 거창한 이름은 떼어 버렸으면 한다.
오히려 오지며 미개하다는 사람들의 신앙심을 본받아야 할 것이 더 많아 보인다. 요즘 인질로 문제가 된 아프간 인들처럼 하루 5번 기도도 못 드리고 가족이나 부족에 대한 유대 관계도 덜한 신앙으로 그들에게 선교 여행이라니 아예 진료나 어떤 일을 하려고 갔다는 명목이라면 더 의미 있지 않았을까? 지금 자신의 부모는 집에서 굶고 있는데 부모님에게 용돈조차 못주는 사람들이 자기계발을 위한 여행을 가지고 왜 선교여행이라고 해서 건전한 종교인들을 들뜨게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퓨전화 된 신앙을 볼 때마다 늘 신앙에 회의가 든다. 신앙생활도 욕심이요 복 받기 위해서 자신이 잘되기 위한 복 받기 운동인데 이를 무슨 거창한 신앙운동으로 말하다니! 무슨 인류구원을 생각하면서 인류에게 무엇을 빼앗기 경쟁하는 신앙을 바꾸지 않고 그리스도를 욕보이는 신앙을 가지고 신앙인인척하다니! 우리는 1907년의 信仰大復興運動을 경험했다. 그런데 그 결과는 한일합방이었다. 무엇을 의미 하는가?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이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
개인의 신앙도 전체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무의미 한 것이다. 우리에게 이렇게 신앙의 흐름 전체를 못 읽게 하고 자기 욕심 자기 구원에만 눈멀게 한 그런 종교로서의 집단은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만 이 땅에 진정한 기독교의 신앙이 살아 날 것이다.
나는 내 핏줄이 중요하기 때문에 허위에 가득 찬 사업을 기독교로 위장한 종교단체에 이제 그만 그리스도를 팔아먹으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왜 신앙은 어리석기만 하는가?
불과 2-3백년 된 종교들이 마치 수천 년의 신앙과 전통을 가진 것처럼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상당히 새로운 이슈를 던져주었기 때문에 붐을 일으킬 만 했다. 그런데 이들은 어느 날부터 순수성을 잃기 시작했다. 교회에 신권이 위임된 것으로 광고하고 일반인들을 오해하게 한 것이다. 하나님은 어느 교회에도 신권을 위임하지 않았다. 단지 교회는 신앙인의 공동체 일 뿐이다.
함께 모여서 신앙을 지키는 에클레시아 이였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서로 교제하는 코이노니아 로서 의미가 중요했고 이들은 자신의 모임을 늘여가면서 신앙의 동료를 모으는 활동으로 디아스포라 로 사방으로 퍼진 것이다. 이 교회라는 조직은 스스로 권위를 만들고 그 권위를 마치 하나님이 준 자신만의 특권이라고 한 것은 신의 대한 도전이었고 새로운 질서를 탄생 시킨 것이다.
그래서 만든 이런 조직은 인간의 조직이라도 투명해야 하거늘 신의 조직이라고 자처한다면 더 투명해야 했다. 어쨌든 교회는 그렇게 커져갔고 한 세기 전에는 이 땅에 까지 왔다. 이 땅에 들어 온 교회는 혼란기와 전쟁에서 구호와 원조의 구심점의 역할을 감당했다. 그래서 지금은 선교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미개한 지역을 개발하여 도와주는 좋은 역할을 한다는 명문으로 아직도 불투명한 교권을 늘여가는 방법으로 이제는 선교라는 명목으로 교회와 교단의 자신의 줄을 만들겠다고 야단이다 이는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보다도 지금의 교회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자기 교인의 가난과 아픔을 먼저 돌보아주고 그 여력으로 함께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같은 코이노니아 공동체인 교단 안에서도 미자립 교회가 넘쳐나고 같은 지역 내에서 같은 교단의 적은 교회 교인을 대형교회가 빼앗아 가는 것도 선교라고 하는 어리석은 신앙을 가진 이들은 신앙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에 병든 병을 전염시키는 일이다 지금 우리는 교회를 재정비하여야 한다.
우리의 종교처럼 남의 종교와 신앙도 중요한 것이다. 아프간인이들이 무슨 남의 종교 전쟁에 선교를 한다고 불을 붙이는 그 어떤 교회 앞에서 알라를 믿으라 외치고 그들의 선교사가 지하철에서 전도를 한다고 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볼까? 한국교회는 자신의 병을 타종교에 전염시킬 것이아니라 먼저 자신의 병을 고치고 선교를 하던 전도를 해야 신앙이 산다. 이 무슨 난장에서 욕심을 파는 일을 단기 관광과 연계된 선교여행인가? 베드로가 울고 바울이 통회할 일이다.
교회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공회당이요. 그 모임의 집합체인 것이다. 이를 확대해석하여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적자라는 생각들을 버려야하고 모든 신앙인을 포옹할 준비를 하고 이를 시행해야 이 땅에 평화가 올 것이다.
함께하는 사회
송 세준